"화려한 타이틀은 오히려 걸림돌이었어요"
이 여자, 치과 의사다. 2집을 발매한 가수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에세이집을 발간했다. 「나는 날마다 발칙한 상상을 한다」. 책의 제목이다. 표지에는 '발칙한'이라는 어절이 유난히 크게 프린트됐다. 빨간 글씨에 빨간 띠를 둘렀다. 궁금해졌다. 얼마나 발칙한 상상을 하고 있는지.
그녀가 원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강남 이지 치과에서 이지씨를(본명 이지영) 만났다. 오후 12시 10분쯤, 진료가 한창이었다. 그녀는 두 명의 환자를 동시에 돌보고 있었다. 벽에는 그녀의 치과를 다녀간 연예인들의 사진이 붙어 있다. 고백하건대, 진료를 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녀의 음반을 먼저 듣고 가수로서의 그녀를 먼저 접했기 때문이다. 편견이란 이렇게 무섭다.
가수 데뷔 당시 대중의 시선에도 편견이 어려 있었다. 그녀는 '서울대 출신 치과 의사 가수'로 언론에 알려졌다. 치과 의사라는 점이 부각됐다. '서울대 출신'이라는 타이틀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가수로 데뷔한 이지의 배경에 관심을 보였다. 언론의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화제의 인물이 됐다. 인터뷰 요청도 쇄도했다. 그러나 가수로서 활동하는 데는 그녀의 배경이 걸림돌이었다.
"사람들이 치과 의사에 대해 가지는 일반적인 선입견이 있잖아요. 서울대 출신이라는 점도 그렇고."
악플도 많았다. 이제는 "악플과 대화하는 수준"이라며 웃을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지만 처음에는 힘들었다. 워낙에 낙천적인 성격인데도 악플은 견디기 어려울 만큼 잔인했다. 책에는 그녀를 향한 몇 가지 악플이 적혀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녀의 배경을 공격한다. '노래가 안 되니까 치과 의사인 것을 내세운다' '남의 이빨만 보고 사는 게 심심한가' '치과 의사나 하지 그 실력으로 음반은 왜 내는 거야' 등등. 그나마 책에 실을 수 있는 내용이 이 정도다. 차마 말로 하기 어려운 악플도 많았다.
가수 이지의 노래를 듣기 전에 배경을 접한 대중은 그녀에게 특히 냉정했다. 무대에 섰을 때도 관객은 '얼마나 잘하나 보자'며 색안경을 끼고 그녀를 지켜보기 일쑤였다. 똑똑하고 돈도 많은 여자가 욕심을 부린다는 얘기도 들었다. 한국에서 '서울대 출신'이라는 타이틀이 갖는 막강한 힘도 이지에게는 마이너스로 작용했다. '화젯거리'가 되기에는 충분했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던 것이다.
"여자로 사는 것은 행복한 일이에요"
욕심을 부린 것은 사실이다. 이지는 욕심도 꿈도 많은 여자다. 에세이집 발간도 그녀의 꿈이었다. 그동안 담아두었던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풀었다. 한국의 여성들을 머릿속에 그리며 글을 썼다. 한국에서 여자로 살아가면서 느낀 감정들, 극복해야 했던 것들을 동시대의 여성들과 나누고자 했다.
"아직까지 한국 사회는 여성에게 모진 편이에요. 매일 인터넷과 각종 매체들을 통해서 접하는 기사들을 봐도 그렇죠. 스캔들을 일으킨 여자 연예인들이 재기하는 것은 남자의 경우보다 어려워요. 백지영씨의 컴백이 성공적이었던 것은 그래서 큰 의미가 있어요."
우리 사회에서 튀는 여자에 대한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다. 그녀는 보수적인 의료계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라고 말한다. 치과 의사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 나가고 있는 그녀도 '남자들의 등쌀'에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여자로 태어난 것을 후회한 적은 없다. 여자로 살아가는 즐거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즐거움은 나를 마음껏 가꿀 수 있다는 점이에요. 여성에게 관대하지 않은 점이 있는 것처럼, 남성들이 자신을 치장하고 가꾸는 것에 대해 아직 사회는 완전히 열려 있지 않으니까. 여성으로서 누릴 수 있는 장점 중 하나죠. 두 번째는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겁니다. 출산은 하늘이 주신 가장 큰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외모를 가꾼다는 것은 단순한 '치장'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자기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치장은 불가능하다. 화장술이 뛰어나다고 해서 예뻐 보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확실한 자기애와 자신감 그리고 삶의 활력이 묻어나는 치장이 진짜다. 남자나 여자나 마찬가지다. 자신의 내면과 외면을 가꿈으로써 스스로 가치를 높여가는 즐거움을 그녀는 잘 알고 있다.
이런 그녀도 사랑에는 아쉬움이 많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슴이 아리는 애틋한 사랑을 경험한 적이 없다. 책을 쓰면서도 안타까웠던 부분이다. 계산을 모르던 어린 시절의 사랑, 남자의 조건 같은 것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빠져드는 아픈 사랑의 기억이 없다.
이제 그런 사랑을 경험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흘렀다. 남자의 조건을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나이가 됐다. 그래도 서두를 생각은 없다. 사랑은 작정을 하고 덤벼든다고 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감기처럼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올해는 꼭 누군가를 만났으면 좋겠다. 외모는 중요치 않다. 따뜻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
"올해는 좋은 사람 만나야죠. 제 바쁜 생활을 이해하는 사람, 많은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 그리고 남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의리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바쁜 일상, 제 삶의 에너지예요"
그녀는 바쁠수록 힘이 난다.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하루를 잘게 쪼개 쓴다. 2005년 11월의 어느 금요일은 특히 기억에 남는다. 2집 앨범 준비로 한창 바쁠 시기. 오전에는 치과에서 진료를 하고, 점심시간에는 인터뷰를 했다. 오후 진료를 마치고 저녁에는 방송 녹화가 있었다. 녹화는 오후 10시까지 계속됐다. 저녁도 걸렀다. 녹화를 마치고 바로 녹음실로 향했다. 밀린 녹음을 마치고 나니 오전 1시. 집에 돌아와 정신없이 잠들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은 삶의 원동력이다. 그녀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하루를 되새길 때가 가장 행복하다.
그녀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설레는 일. 바로 다음에 저지를 일을 꿈꾸고 계획할 때다. 그녀의 또 다른 꿈은 의학 지식을 친근하게 전달하는 인포테인먼트 프로그램의 진행자다. 딱딱하지 않게 시청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쉽고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해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독자에게, 그리고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대답은 간단했다.
"'저지르라'고 말하고 싶어요. 무조건. 하고 싶은 일을 미루고 살아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아요. 행동으로 옮겨야죠.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 생각이 들 때는 일단 하고 후회하는 게 나아요."
치과 의사, 가수 그리고 방송인. 그녀를 수식하는 타이틀은 화려하다. 그러나 그녀가 멋진 것은 다양한 직함 때문이 아니다. 그녀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솔직하고 당당한 태도다. 사회가 자신에게 바라는 모습에 맞춰가기보다 자신에게 충실한 인생을 살아가다 보니 그녀는 늘 사는 게 즐겁다.
평범하지 않은 그녀의 모습이 발칙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발칙함이 삶의 활력이 된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녀는 자신의 책을 읽는 모든 여성이 멋지고 당당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
남들이 바라는 자신의 모습에 애써 맞춰 사는 인생은 '내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나이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당신의 마음이다. 발칙한 당신의 상상력이다.
■글 / 정우성 기자 ■사진 / 이주석 |